1. 기본정보
감독 : 라스 폰 트리에
장르 : SF, 심리
출연 : 커스틴 던스트, 샤를로트 갱스부르 등
상영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평가 :BBC 선정 100대 21세기 영화
2. 멜랑콜리아의 서사 - 극단적 우울과 세계종말의 은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2011년 작품 '멜랑콜리아'는 환멸과 절망, 우울증에 시달리는 인간 내면을 지구 종말이라는 거대한 은유를 통해 표현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멜랑콜리아란 천체는 실제 지구에 충돌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인류 종말을 암시하는 중요한 소재로 활용된다. 영화는 크게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다. 전반부에서는 저스틴과 미카엘 부부의 결혼식 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화려한 결혼식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신부 저스틴은 깊은 우울증으로 몸부림치며, 가족들 사이의 갈등과 알력도 고조된다.
후반부에서는 클레어 가족이 중심이 된다. 클레어의 남편 존, 그리고 아들 리오와 함께 살고 있는 클레어의 여동생 저스틴이 등장한다. 저스틴의 우울증은 점점 악화되어 결국 자살까지 시도하게 되고, 가족들은 멜랑콜리아 천체가 지구에 충돌할 것이라는 사실 앞에서 각자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처럼 '멜랑콜리아'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을 천체를 통해 상징적으로 그려내며, 결국 모든 것이 파괴되고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 비관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극단적 우울과 절망, 가족 해체와 같은 주제를 통해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3. 상징과 기호 - 천체물리학과 인간심리의 일체화
'멜랑콜리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상징물은 단연 제목에서 명명된 '멜랑콜리아' 천체다. 이 천체는 영화 내내 지구에 불가피하게 충돌할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멜랑콜리아 천체는 인류 종말, 나아가 모든 것의 파괴와 소멸을 암시하는 중요한 기호이자 상징물이 된다. 이런 천체의 등장은 단순한 SF적 요소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비극성과도 연결된다. 주인공 저스틴이 겪는 극심한 우울증과 환멸, 자살 충동 등의 내면적 갈등이 거대한 천체와 대비되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저스틴은 마치 멜랑콜리아라는 천체를 예견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영화에는 여러 가지 상징물과 기호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말에 의해 들키는 장면, 저스틴의 목에 맺힌 보석 목걸이 등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보석을 형상화한 가족 초상화 역시 가족의 모순과 갈등을 상징하는 요소로 해석할 수 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멜랑콜리아'에서 인간의 내면 심리를 다양한 상징과 기호를 통해 천체물리학과 일체화 되도록 표현하고 있다. 서사와 영상미가 작품의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고 있는 것이다.
4. 뛰어난 촬영기법과 미장센
'멜랑콜리아'는 영화의 주제의식과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잘 구현해낸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독특한 촬영기법과 미장센이 돋보이는 영화로, 화면 구성과 색감 등이 인상적이다. 먼저 이 영화에서는 롱테이크 기법이 많이 사용되었다. 장면 전환 없이 한 번에 길게 촬영하는 롱테이크로 인해 영화의 긴장감과 전개감이 배가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결혼식 리셉션 장면이나 말이 저스틴을 들키는 장면 등이 있다. 슬로모션 기법 역시 자주 등장한다. 천천히 흘러가는 영상미로 인해 상황의 비극성이 강조되고, 관객들에게 시간에 대한 느낌을 줌으로써 몰입도를 높였다.
이 영화의 촬영과 미술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색감이다. 전반부에서는 차가운 블루 톤이 주를 이루다가, 후반부에로 갈수록 따듯한 레드 톤이 강해진다. 이는 천체 충돌에 가까워질수록 상황이 역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장센 측면에서도 많은 상징성을 담고 있다. 특히 신부 저스틴의 화려한 웨딩 드레스와 보석 장식, 동화 같은 결혼식 무대 등이 인상적이다. 아름답지만 인위적이고 가식적인 이미지들이 인간의 모순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촬영기법과 미술에서의 섬세한 영상미는 '멜랑콜리아'의 내적 메시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5. 커스틴 던스트와 샤를로트 갱스부르 - 명배우들의 열연
'멜랑콜리아'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단연 주연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이다. 특히 커스틴 던스트와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열연이 큰 빛을 발했다. 커스틴 던스트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저스틴 역할을 맡아 환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그녀는 결혼식 날부터 보였던 심한 우울 증세와 공포감, 그리고 자살 충동 등 내면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섬세하고 리얼하게 표현해냈다. 특히 눈빛 하나하나에서 절망감이 넘쳐났다.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연기한 클레어 역시 매력적인 연기를 펼쳤다. 자신의 여동생 저스틴을 걱정하며 보듬어주지만, 동시에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천체 충돌 위기 상황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장면들이 감동적이었다.
두 배우 모두 트리에 감독의 지시에 잘 따르면서도 자신만의 해석과 연기를 가미했다고 한다. 던스트의 경우 우울한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실제로 우울증 환자들을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키이란 힌즈, 존 허트, 샬토 코플리 등의 연기가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배우들의 명연기가 '멜랑콜리아'의 무거운 주제의식을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6. 라스 폰 트리에의 감독철학 - 혐오와 사랑 사이
'멜랑콜리아'를 통해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독특한 영화관과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인간 존재의 모순과 부조리, 혐오와 사랑의 경계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트리에 감독은 자신의 영화들에서 인간의 어두운 면모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울증, 성적 문제, 가족 해체 등 인간 내면의 그림자를 철저히 파헤친다. '멜랑콜리아' 역시 이런 맥락에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속 우울증 캐릭터 저스틴은 트리에 감독 자신을 투영한 분신으로 해석된다. 감독 본인도 평소 우울증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스틴은 단순히 우울한 모습만 보여주지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고 천체의 섭리를 경외하는 등 인간미 있는 모습도 엿보인다. 혐오와 사랑,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인간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 트리에의 기획 의도였다. 특히 후반부에 이르러 저스틴과 클레어 자매가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모습에서 사랑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천체 충돌이라는 SF적 상황 설정 역시 트리에 감독의 비관적 인생관을 대변한다. 결국 모든 것이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염세주의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천체의 섭리 앞에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초연한 자세 역시 의미심장하다. '멜랑콜리아'는 트리에 감독 특유의 혐오와 사랑,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가는 이중적 메시지가 잘 녹아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